金杉基 / 시인, 칼럼리스트
원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시적인 것들은 수만 가지의 색상을 띠고 있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온통 칼러풀하다.
인류는 이 칼러풀한 세상의 모습을 남겨두기 위해, 고대 때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 18세기까지 주로 그림을 활용했지만, 실체 그대로를 표현할 수는 없었다.
이런 회화적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계기가 바로 19세기 초 사진의 출현이다.
사진은 단면이지만 사람이나 사물의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1850년경 개발돼 100여 년 동안 인류가 사용해왔던 흑백사진으로는 칼러풀한 세상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 하고 흑과 백의 조화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흑백사진시대까지는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칼러풀한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보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칼러풀한 세상을 칼러풀하게 묘사하진 못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발전을 거듭하여 1950년경 칼라사진 개발 이후 지금까지 칼러풀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존재하는 그대로의 색상과 거의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 자체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표현하고 있는 모든 것들도 칼러풀한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예술이나 문학은 실제 존재하는 상황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서 본질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 그대로를 표현하는 칼러시대보다 흑백 프레임이라는 각도로 표현되는 흑백시대가 더 예술적이고 더 문학적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칼러풀한 세상을 칼러풀하게 보는 것은 나무도 자연스러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지만, 칼러풀한 세상을 흑백 프레임으로 보는 것은 엄청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으로 과히 예술적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모 방송에서 오래 전 방영되었던 흑백영상을 다시 보면서 기술력이 부족했던 시대의 흑백영상이라는 생각보다 내 상상을 자유롭게 하며 집중시키는 예술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간헐적으로 방송에 나오는 흑백광고 영상을 볼 때도, 역시 흑백광고가 주는 메시지의 표현력이 진정성 있게 느껴지고, 의미 전달이 잘 된다는 생각을 했다.
칼러드라마나 칼러광고가 왠지 거짓으로 포장되고, 속임수가 난무하고, 그래서 마법에 걸려 있는 동화 속의 세상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인류가 자연을 그대로 닮기 위해 과학과 기술을 향상시키면서, 자연과 거의 비슷하게 될 때까지 과정에서의 미흡한 과학과 기술이 오히려 예술적이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칼러플한 자연을 그대로 칼러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흑백 프레임을 예술이라고 말하는 우리다.
[단상]
과거 흑백사진이나 흑백드라마를 감상하면서 예술적인 분위기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