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杉基 / 시인, 칼럼리스트
오래 전 친구로부터 머리를 잘 깍는다는 이발소를 소개받고 신설동에 있는 허름한 이발소를 찾았다.
이발소 안에 들어서자 70대로 보아는 이발사는 막 손님의 머리를 깍기 시작했고, 2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이발사는 대기하는 손님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발 중인 손님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대기시켜놓고 관심도 없는 서비스 빵점의 이발사가 얄미웠지만 끝까지 참고 순번을 기다리기로 했다.
1시간쯤 지난 후, 내 차례가 되어 머리 깍는 의자에 앉았을 때도 대기자가 3명이나 있었다.
나는 대기자들 때문에 이발사가 내 머리를 대충 깍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를 했지만, 이발사는 전과 같이 대기자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내 머리 깍는 데에만 집중했다
이발사는 최고의 솜씨로 최선의 자세로 아주 정성껏 내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면도도 대충하지 않고 얼굴 전체를 빈틈없이 다 해줬고, 코털까지 깨끗하게 깍아준 후 드라이기로 머리도 제대로 다듬어줬다.
나는 이발소를 나오면서 이 이발소가 왜 유명한지를 알 수 있었다.
이발소는 이발을 잘 해야 유명한 이발소지, 대기자에게 서비스를 잘한다 해서 유명해지지 않는다는 간단한 원리를 알게 됐다.
만약 이발사가 내가 대기했을 때에 초점을 맞춰 지루하지 않게 온갖 서비스를 다 해주고, 정작 머리를 깍을 때는 기다리는 대기자 때문에 대충 머리 손질을 해줬다면, 아마도 나는 실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서소문에도 김치찌개를 잘 하기로 소문난 짤라집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이 곳 역시 기다리는 손님이 아무리 많아도 대기하는 손님 보다 자리에 앉아서 식사하는 손님에게 올인하는 식당이다.
식당 안에서 손님이 늦게까지 식사를 해도 짤라집 사장이나 종업원은 대기 손님이 많으니 빨리 일어났으면 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발소건 짤라집이건 대기하는 손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본 서비스를 받고 있는 손님에게 소홀히 대했다면, 대기 손님 역시 자신이 본 서비스를 받을 때쯤 곧장 실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기하는 손님에게도 최선을 다 해야 하지만, 손님의 목적인 본 서비스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기할 때는 빨리 내 차례가 오기를 원하지만, 자신이 본 서비스 자리에 가면 대기자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기를 원하는 게,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기적인 속성이다.
어떤 상황이건 대기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느라 본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게 ‘대기원칙(待機原則)’이다.
순번을 기다리는 대기기 본 서비스라는 목적에 방해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게 ‘대기원칙’의 핵심이다.
[단상]
‘대기원칙’은 원래 있던 원칙이 아니고, 제가 지어서 명명한 원칙입니다.
대기원칙이 서비스업을 하는 분들에게 적용되어 유익이 되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