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杉基 / 시인, 칼럼리스트
30대 중반에 벨기에 법인 ‘Fina Chemical’ 서울지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사무장 경력을 가진 손 상무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10여 년 동안 살다온 강 부장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 두 명의 상사다.
당시 대리였던 나에게 하늘같이 높은 손 상무와 강 부장은 회사의 주요 업무회의 때는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기로 유명했지만, 점심시간이나 회식자리에서는 그 엄격함이 흐트러지곤 했다.
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손 상무가, 미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강 부장이 신들린 듯 자신들의 경험담을 늘어놓다보니, 평소 엄격한 모습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눈치 챈 직원들은 회식 장소에서 법에 관한 이슈를 슬쩍 내밀면서 손 상무에게 기회를 주거나,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강 부장에게 기회를 주는데 익숙했었다.
그래야 회식 분위기도 좋고, 이 두 명의 상사와의 관계도 좋아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대인관계에서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면 상대가 잘 할 줄 아는 이야기를 유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손 상무나 강 부장과 함께 출장을 가거나 회식이 있을 때마다, 법과 미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준비하여, 내가 먼저 화두로 꺼냈고, 미리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대화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내가 40대에 정치모임에서 만났던 동년배 친구 두 명의 강한 스타일도 잊을 수 없는 경우다.
바로 히말라야 5개 정상을 등정한 홍 이사와 국제마라톤대회 70여 회 완주 경험이 있는 유통회사 김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역시 나를 만나기라도 하면 자기 관심 분야를 이야기하면서 즐거워했고, 상대적으로 등반이나 마라톤 경험이 부족한 나를 대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좋아했다..
50대에 신우회에서 만난 3년 후배 신학박사 장 교수도 이야기 도중 내가 신학 이야기를 유도하기라도 하면, 무척 행복한 모습으로 나에게 자신만의 신학세계를 장시간 동안 설명해줬다.
외국법인과 정치모임 그리고 신우회에서 만난 위 5명(상사, 친구, 후배)의 마음을 열게 하고, 마음을 얻는 방법은 단지 그들에게 자신이 잘 할 줄 아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으로 아주 간단했다.
내가 50대 때까지 누군가에게 그들이 잘 할 줄 아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얻었듯이, 혹시 60대인 현재 내 주변에서 누군가도 나에게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봤다.
최근에는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어제 전화로 안부전화를 했던 전 직장 동료 윤 상무와 김 전무가 떠올랐다.
이 둘은 나를 만나거나 통화를 할 때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고, 내가 매일 쓰고 있는 ‘멀리서 다가오는 단상(斷想)’이나 내가 좋아하는 정치 이야기를 하도록 배려했고, 그래서 그들도 내 마음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물류 법인을 준비하고 있는, 어제 오후에 만났던 포딩회사 박 사장도 마찬가지다.
최근 1-2년 동안 방글라데시 출장을 자주 다니면서 방글라데시 최근 상황을 잘 아는 데도, 자신이 방글라데시 관련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30년 전에 내가 다카에서 근무했던 추억들을 신나게 이야기하도록 배려했다.
우리 주변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보다 내 말을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고, 특히 내가 잘 알거나 잘 할 줄 아는 분야를 이야기하도록 배려하는 사람이 확실한 것 같다.
칭찬은 상대에 대한 일방적인 표현으로 가식적일 수 있지만, 배려는 상대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에게 용돈을 많이 주고 비싼 옷을 사주는 것보다 부모가 제일 잘 하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배려하고 실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주면 그 사람을 위해 목숨 걸고 충성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줄 때 그 사람을 위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정부도 국민이 잘 할 줄 아는 것을 국민 스스로 이야기하게 하고, 할 수 있게 해줘야 국민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나도 윤 상무와 김 전무, 그리고 박 사장을 만날 때, 그들이 잘 아는 분야의 이야기를 하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할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30대 때 상사였던 손 상무를 다시 만난다면, 30년 전과 같이 손 상무가 법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할 생각이다.
단상
오늘 누군가를 만난다면, 칭찬보다는 그로 하여금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배려해보면 어떨까요?
칭찬보다는 배려를 많이 하는 우리 사회가 되면 좋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