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리스트
이스라엘 남부지역에 위치한 마사다(Masada)는 유대인 민족주의자들이 2년여 동안 로마제국의 이스라엘 점령을 막으려고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요새다.
로마 군사가 유대인 동족을 방패막이로 앞세워 마사다 요새를 공략하자, 동족을 죽일 수 없기 때문에 마사다 요새의 유대인은 로마 군사에게 처형되는 것 대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에 유대인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죽이고, 다시 모여 열 사람씩 조를 짜서 제비뽑기를 통해 한 사람이 아홉 명을 죽이는 방식으로 죽음의 의식을 반복해서 치렀다.
최후의 한 사람은 전원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성에 불을 지른 후 자결했다.
로마 군사가 마사다 요새에 진입했을 때, 마사다에는 936구의 시체 외에 살아남은 자는 5명의 어린이와 2명의 여자뿐이었다.
이들이 당시 상황을 증언함으로서 마사다 항전의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마사다는 유대인의 역사적 현장으로 이스라엘의 민족적 자긍심과 단결을 상징하는 장소로 인정되어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이스라엘 사관생도는 임관식을 마사다 요새에서 갖고, 그들은 마사다에서 "더 이상 마사다는 없다(No more Masada)"를 외치며 다시는 나라를 뺏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한다.
우리도 6.25 전쟁 역사 속에서 마사다 같이 고지를 끝까지 지키다 모든 장병이 전사하고 고지가 함락된 전투지역이나 38선 같은 상징적인 곳이 있다.
지나 2월 26일 2021년 ROTC 임관식이 충북 괴산 육군학생군사학교와 전국 117개 학생군사교육단에서 일제히 열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육군학생군사학교 임관식에는 전국 117개 학생군사교육단 대표 1명씩만 참석했고, 동시에 각 대학 학군단에서 자체 임관식을 치렀다고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고 지금도 전쟁의 위험이 가장 높은 내한민국의 국방을 책임질 장교들의 임관식치고는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만약 외신 기자였다면 대한민국 장교 임관식의 기사 제목을 ‘전쟁보다 코로나19가 더 큰 대한민국 장교 임관식’이라고 잡았을 것이다.
임관식장의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는 데 막대한 인력과 돈을 투자해서라도, 임관하는 모든 장교를 3.8선 근처 연병장에 모두 모아놓고 "더 이상 38선은 없다(No more 38-line)“는 구호를 외치며 임관식을 거행하지 못한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삼일절 기념식도 어제(3.1) 102년 전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탑골공원에서 열렸다.
삼일절 기념식 역시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탑골공원 기념식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후손 및 정부 주요 인사 등 50여명만 참석했고, 동시에 각 지자체에서도 자체 기념식을 치렀다.
한편 일부 시민들과 어린 학생들은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을 비롯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심문을 받았고, 유관순 열사도 꽃다운 나이에 죽임을 당했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를 찾았다고 한다.
나는 “No more Masada”의 교훈을 거울삼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3.1독립운동사에서 선언문을 낭독한 탑골공원도 기억해야 하지만, 일본으로부터 온갖 고문과 수치를 당했던 서대문형무소도 꼭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서대문형무소(역사관)를 찾은 시민들과 학생들은 분명 마음속으로 “No more Seodaemun Prison”을 외쳤을 것이다.
대한민국 장교 임관식도 삼일절 기념식도 “No more Masada”의 정신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역설적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대한민국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가 독립의 기쁨 보다 아픈 역사를 먼저 생각하라는 메시지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단상]
공무원도 임명받을 때, 세월호 앞에서 "더 이상 세월호는 없다(No more Sewol ferry)"를 외치며, 다시는 안전불감증에 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개인도 자신이 가장 수치를 당했던 장소에서 “No more Shame”을 외치며, 다시는 수치를 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