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나도 요즘 아빠 따라서 글을 쓰는데, 영 힘든 일이 아님 / 하루에 하나도 완성 못해 ㅋㅋ / 그래도 일기 쓰듯이 매일 씀 / 언젠간 늘겠지 생각하면서,,,
지난 토요일 시집간 딸이 우리 가족 단체 카톡방에 올린 메시지다.
그리고 ‘행복의 기준’이라는 글도 아래와 같이 올려놨다.
행복의 기준,,,,,,,,,,,,,,,,,
며칠 전 회사 멘티와 점심식사를 했다.
멘티는 작년 인턴 과정 때 내가 멘토를 맡았고, 당당하게 우리 회사에 합격한 아직 회사생활이 1년도 안된 신입사원이다.
식사 도중 멘티가 나에게 물었다.
“멘토님은 행복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는 것, 내가 하기 싫은 것 안하는 것”
답에 대한 고민도 없이 바로 튀어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의 기준을 물어보면, 자신만의 관점이 아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기준을 말하곤 한다.
만약 무언가를 먹고 싶을 때 먹으면 그 게 행복이고, 그래서 행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데, 남과 비교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본인의 행복을 놓치는 것 같다.
물론 공동체 생활에서 굳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 행복만을 챙긴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행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만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한편으로 보면 "하고 싶은 것 하고, 하기 싫은 것 안하는 것“은 대단한 행복의 기준은 아니다.
행복의 기준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거창하게 잡은 행복일수록 내 관점 보다 남의 시선이 많이 반영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 하고, 하기 싫은 것 안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적용된다.
지금 당장 글을 쓰고 싶어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끄적이고 있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 행위로 내 인생의 행복의 기준에 어울리는 것이다.
혹자는 내가 행복의 기준을 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삶이 상황에 따라서는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는 노력해서라도 하고 싶은 상황으로 만들어 놓고 시작해야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 글을 마치는 대로, 난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릴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나는 딸의 글을 읽고 나서, 지금까진 내 단상을 딸이 모니터링 해줬는데 이제 내가 딸의 글을 모니터링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밌는 것은 딸이 태어났을 때, 나를 닮았듯이, 딸의 글도 내 글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문구나 조사나 글감 그리고 전체 글의 흐름도 내 단상과 너무 흡사하다.
여러모로 나를 닮은 딸이 내 옆에 있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고, 가장 큰 행복의 기준이 아닐 수 없다.
[단상]
오늘 아침은, 일기 쓰듯이 매일 글을 쓰고 있다는 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딸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아버지의 별명은 ‘딸바보’가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