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4288.10.16 / 마음의 거울 / The Mirror of Heart
세상사람 다 속여도, 심경, 너는 속아지 않으리,
I'll never deceive you (mirror of heart)
위 내용은 1955년 아버님이 카투사(KATUSA)시절 일기장 표지에 써놓은 문구다.
내가 중3 때, 사전의 힘을 빌려서라도 영어를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다고 판단한 할머님은 나에게 위 일기장을 내놓으셨다.
그러니까 할머님은 내가 한 살때,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의 유품을 15년 정도 가지고 있다가 손자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마음의 거울’은 나의 좌우명 같은 존재였고, 그래서 내 주변에서 나로 인해 일어나는 상황이나 사건들에서 반사되는 나의 마음의 모습을 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에 최근 주변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은 마음도 달랠 겸, 서재에서 과거에 읽었던 책 한 권을 찾다가, 아버님의 일기장 ‘마음의 거울’을 발견하고 한참 동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거울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잘 나타나 있는 얼굴을 ‘마음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러나 얼굴이 ‘마음의 거울’이라면, 그 ‘마음의 거울’인 얼굴을 다시 거울로 봐야 볼 수 있으니 뭔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얼굴은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보는 것이기에, 얼굴을 통해서 내 마음을 본다는 의미의 ‘마음의 거울’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얼굴이 ‘마음의 창’은 될 수 있어도 ‘마음의 거울’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무언가가 ‘마음의 거울’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무언가를 보고 내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의 거울’은 내가 주체가 되어 내 마음을 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이나 외모를 볼 수 있는 일반 거울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거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실제 ‘마음의 거울’이 없다보니 상상으로만 자신의 마음을 생각해야 하고, 그래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예 마음이 병들어 있는 것 조차 모르고 사는 것 같다.
유행가 가사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처럼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마음의 거울’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제 저녁 아버님의 일기장(마음의 거울)을 보고, 나는 아버님의 ‘마음의 거울’을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래서 아픈 상처도 깨끗이 씻고, 작지만 새로운 비전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물을 마시러 호숫가에 갔다가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했던 나르시스처럼 나도 훗날 내 일기장(마음의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나?”라고 감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의 거울’을 매일 깨끗이 닦아서 내 마음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내가 아는 분 중에 L권사는 성경이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마음의 거울’이고, K서예가는 글씨가, 모 키친그룹 회장은 닭이 ‘마음의 거울’이다.
그들은 성경이나 글씨나 닭을 볼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나는 단상(칼럼)을 쓰거나 읽을 때, 내 마음을 가장 잘 볼 수 있어, 나에게 있어 ‘마음의 거울’은 단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가 ‘마음의 거울’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더 아름다워 질 것이다.
[단상]
감옥이나 병마와 같은 ‘마음의 거울’이 주어지기 전에 내 스스로 더 멋진 ‘마음의 거울’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마음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면, 주말 주일에 잘 닦아서 깨끗한 ‘마음의 거울’로 다음주를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