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 시인, 칼럼니스트
지난 7일 중도성향 정치인 대선후보가 소득 하위 88% 가구 구성원에게 1인당 25만원씩 지급하는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우리나라 중산층이 붕괴되었다.”고 주장했다.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도 며칠 전 중산층 70% 달성을 위한 경제 상생 전략을 발표했고, 그 외 여야 후보들도 최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연일 발표하고 있다.
모든 대선후보들이 중산층을 언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20대 대통령선거를 6개월 앞두고 대부분의 대선후보들이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한 전략으로 중산층을 겨냥했다는 게 조금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혹시 대선후보들이 중산층과 중도층을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산층(中産層)은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문화적 수준이 중간 정도 되면서, 스스로 중산층 의식이 있는 사회 집단을 가리키는 사회적 용어고,
중도층(中道層)은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그 중간을 지향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정치적 용어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보면, 유권자들이 평상시에는 대부분 중도에 머물러 있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진보나 보수로 다 몰려갔다.
특히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중도 후보는 1% 특표도 못하고, 진보 후보와 보수 후보가 99% 이상 득표를 해왔다.(19대 대통령선거 제외)
우리나라 정치가 흑백논리에 의한 양극화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깝기 그지 없다.
우리 사회에 편 가르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진보와 보수, 갑과 을, 노와 사 등 편가르기식 습성때문에 흑백논리가 만연해진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어정쩡한 중립보다 ‘모 아니면 도’ 식의 호불호를 정확히 표해야 인정받는 이분법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흑백논리와 이분법은 같은 개념으로, 참과 거짓, 정답과 오답 같이 흑백논리의 기준이 객관적인 경우에는 논리적인 타당성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사고방식이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서 객관적인 기준이 애매한 경우인데도 한쪽에만 치우쳐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 정치사는 지금도 중도정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양극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원래 이분법(흑백논리)은 주로 서양의 종교나 사상에 적용되었던 원리고, 삼분법은 주로 동양의 종교나 사상에 적용되었던 원리다.
그래서 서양의 기독교는 차갑거나 뜨거워야지 미지근한 것을 부정했고, 동양의 불교와 유교는 양극을 떠나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中道)와 극단 혹은 충돌하는 모든 판단에서 중간의 도를 택하는 중용(中庸)을 중요시했다.
우리나라가 선거 때마다 이분법적 양극화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동양 사상의 바탕에 깔린 삼분법(양극, 중도)에서 중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도정치를 표방했던 정치인들이 다 무너졌던 이유가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것 같다.
몇 년 전, 중도정치를 주장했던 모 정치인은 중도가 양극(陽極)과 동등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중도 대신 극중(極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극중 역시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선후보들이 보수층은 주로 부유층에 있고, 진보층은 주로 빈곤층에 있지만, 중도층은 꼭 중산층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중도층과 중산층이 같아진다면, 그 때는 우리나라 정치가 더 발전해 있을 것이다.
[단상]
이분법 정치보다 삼분법 정치가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