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은 소장유물자료집『구보 결혼-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을 간행했다고 밝혔다.
박태원(朴泰遠, 1909-1986)은「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 『천변풍경』(1936)에서 식민지 도시 경성과 경성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 작가이다.
* 구보仇甫 박태원朴泰遠 호는 구보(九甫·仇甫·丘甫). 1909년(양력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1986년 북한에서 죽었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1929)하고, 일본 호세이대학 예과를 중퇴했다. 1930년 단편소설, 「적멸」, 「수염」, 「꿈」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1933년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여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조용만 등과 활동하면서 예술파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정립해 갔다. 작품으로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금은탑』 등이 있다. 일제 말기에는 『삼국지』등 중국 역사물을 번안했고, 해방 후에는 『약산과 의열단 』등 역사 소설을 선보였다. 1950년 북한으로 가, 그 곳에서 대하 장편소설『계명산천은 밝아오느냐 』, 『갑오농민전쟁』등을 집필했다. |
26살 박태원, 김정애와 결혼하다.
박태원은 26살 되던 해 1934년 10월 24일, 경성에서 한약국을 경영하던 경주 김씨 김하중과 이연사의 무남독녀 김정애와 결혼했다. 그리고 3일 뒤 10월 27일 하객을 모아 놓고 피로연을 열었다. 여기에는 그의 경성제일고보 동창생을 비롯해, <구인회> 동인이었던 이상, 김기림, 이태준, 정지용, 윤희순, 이승만 등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 소설가, 화가 등이 참석하였다.
시와 그림이 된 결혼식 방명록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31×22.5cm, 31면)은 겉표지에 ‘SKETCHBOOK’이라고 쓰인 양장본 형태의 자료이다. 여기에는 피로연에 참석한 이상, 정지용, 이태준, 김기림 등 총 30명의 결혼 축하 메시지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면회 거절 반대’, ‘구보(仇甫) 결혼(結婚)’, ‘신정(新情) 구정(舊情)을 합하야 결혼을 축하하네’, ‘축 성혼’, ‘태화(太和)’, ‘1+1=1’, ‘Von Voyage!’ 등 결혼하는 박태원에 대한 당대 유명 문인, 화가들의 우정과 사랑이 담긴 글과 그림이 남아 있어, 마치 한 권의 시화첩 같은 감성을 전한다. 권영민(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은 이 방명록을 ‘우리 문단사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희귀한 풍속사의 자료로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방명록에 남긴 문인들의 글과 그림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이상(李箱, 1910-1937)_ 시인, 소설가 |
‘면회 거절 반대’ 박태원과 진한 우정을 과시했던 이상은 결혼과 함께 박태원이 바깥 출입을 덜 해서 만나기 어려워질 것을 미리 걱정한 듯 하다. | |
| 정인택(鄭人澤, 1909-1953)_소설가 |
‘박태원 형을 위해 결혼은 뒤에 자식이 없으면 마치 세계에 태양이 없는 것과 같다. 태양생.’ | |
| 윤태영(尹泰榮) |
‘달은 둥그러졌다 이글어지기도 하고 이글어졌다가도 둥그러진다. 그러나 온 바탕은 길이 변함이 없는 것이다.’ | |
| 소동규(蘇東奎) |
‘신정 구정을 합하여 결혼을 축복하네’ | |
| 백남희(白南熙) |
‘축 성혼 자손창성 부귀공명 백인당 갑술 구월 십구, 남희’ | |
| 김동일(金東一) |
‘건실한 가정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김동일’ | |
| 김진섭(金晋燮, 1903-?)_수필가 |
‘사랑의 샘은 다 퍼내도 언제나 새로운 물이 고이노니’ | |
| 정지용(鄭芝溶, 1902-1950)_시인 |
‘太和 꽃피였으니 열매 열고 뿌리는 다시 깊히! 구인회 활동으로 박태원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정지용은 ‘자녀를 많이 두고 가운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이런 글을 남겼다. | |
| 이승만(李承萬, 1903-1975)_화가 |
결혼 전후의 박태원, 가운데로 가리마를 하고 머릿기름을 반지르하게 바른 모습이 어느새 주름살이 생긴 얼굴로 변했다. | |
| 이태준(李泰俊, 1904-?)_소설가 |
‘1+1=1’ 결혼이라는 것은 남녀가 서로 결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뜻을 강조했다. | |
| 이무영(李無影, 1908-1960)_소설가 |
‘태화 작가(作家) 한번 장가가면 귀가(歸家)치 않으니 우리 문단(文壇) 비판말자 무영’ | |
| 고희정(高羲鼎) |
‘박태원 형(泊太苑兄) 김정애 양(金貞愛孃) 두 분의 화혼(華婚)에 당하야 꽃따운 가정(家庭) 일우시기만 축복(祝福)할 따름 1934. 10.27. 친우(親友)’ | |
| 배운학(裵雲學) |
‘박태원 형 유무(有無)의 만(晩) 운학’ | |
| 함화진(咸和鎭, 1884-1948)_국악 명인 |
‘백년 해로(百年 偕老)’ 갑술 중추 오당 박태원 학형’ | |
| R.C.S(미상) |
‘Wie Sonnen Schein(햇빛처럼)’ | |
| 안석영(安夕影, 1901-1950)_화가, 영화 감독 |
‘구보(仇甫) 결혼(結婚)’ 박태원이 강가에 앉아 낚시질을 하다가 인어공주를 낚는 장면을 그려놓았다. | |
| 안석영(安夕影, 1901-1950)_화가, 영화 감독 |
결혼 이후 두 부부가 누리게 될 일상적인 신혼생활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남편 앞에서 부인이 찻잔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다. | |
| 김기림(金起林, 1908-?)_시인, 비평가 |
‘Bon Voyage!’ 박태원의 결혼이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의 여행이 되기를 기원하며, ‘너의 Ami 起林’이라고 표시하여 우의를 과시했다. | |
| 조용만(趙容萬, 1909-1995)_소설가, 영문학자 |
‘Amour(사랑)’ | |
| 윤희순(尹喜淳, 1906-1947) |
‘축 박태원형 화촉’이라는 축하의 문구와 함께 박태원의 안경 낀 긴 얼굴을 그렸다. 이 그림은 이후 박태원의 대표적 이미지가 되었다. | |
| 김상용(金尙鎔, 1902-1951)_시인 |
‘근축(謹祝)’ | |
| 유운경(柳雲卿) |
결혼을 통해 ‘얼마나 더 깊은 인생(人生)을 이해(理解)하시리’ | |
| 이석훈(李石薰, 1908-1950 ?)_소설가, 극작가 |
‘Bouquet d’Amour(사랑의 꽃다발)’ | |
| 유엽(柳葉, 1902-1975) |
‘우리의 영원한 우정을 위해’ | |
| 이흡(李洽, 1908-1950 ?)_시인 |
‘축 화촉’ | |
| 조벽암(趙碧巖, 1908-1985)_시인, 소설가 |
조벽암은 결혼생활을 ‘이밥갓소’ 라고 하여 흰 쌀밥에 비유했다.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생을 함께 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 |
| 안회남(安懷南, 1910-?)_소설가 |
‘연애(戀愛)는 결혼(結婚)의 전제(前提)가 아니요 결혼(結婚)은 연애(戀愛)의 결과(結果)가 아니다. 결혼하기 위하야 연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그이를 일생(一生) 두고 연애(戀愛)하기 위하야 결혼(結婚)하는 것이다. 저는 이러케 생각합니다. 신랑(新郞)께서는?’ | |
| 이하윤(異河潤, 1906-1974)_시인, 영문학자 |
이하윤은 짤막한 서정시 같은 글귀 한 줄을 남겼다. ‘내 귀는 바닷가의 조개껍데기 물결치는 소리가 그립습니다’ | |
| 김규택(金奎澤, 1906-1962)_화가 |
‘좋구나 좋아 FISH SKIN 쓸 일 결코 없겠소’ 김규택은 박태원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이제는 ‘콘돔’ 쓸 일이 없겠다고 진한 농담을 남녀를 반반씩 합친 특이한 그림과 함께 늘어놓았다. | |
| 이원조(李源朝, 1909-1955)_비평가 |
‘광고(廣告) 다방골 봇다인이 장가가오’ *봇다인: 박태원(朴泰遠)의 일본식 발음(복쿠다이엔)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 |
| 김옥진(金玉眞) |
결혼(結婚)은 ‘세상(世上)에(의) 목적(目的)’ 길은 없는 것이니 ‘다른 길로 가지 말 것’ |
구보 전문가 권영민(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논고 ‘구보 박태원의 소설세계’와 박태원의 장남 박일영의 ‘구보 박태원의 생애와 연보’ 함께 실어
박태원의 삶에 대하여는 그의 장남 박일영이 ‘구보 박태원의 생애와 연보’라는 제목으로 아버지의 일생을 추억하며 한 발 한 발 따라가듯 기록하였다. 권영민(權寧珉,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은 ‘구보 박태원의 소설세계’에서 소설 작품들을 중심으로 박태원 문학의 특징과 의의를 정리했다. 1950년 이후 북한에서 이어진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독자들을 찾는다. 특히 이번 자료집은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박태원 관련 유물을 전부 만나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박태원의 삶과 소설 세계를 보다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구보 결혼-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은 유족들의 기증을 통해 일궈낸 성과
2012년 박태원의 유족 박일영(장남), 박재영(차남), 박설영(장녀), 박소영(차녀), 박은영(삼녀)이 서울역사박물관에 ‘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을 비롯해 ‘안경’, ‘인지 도장’, ‘천인천자문’, 작품집 등 유물 40건을 기증했다. 이러한 기증 성과를 바탕으로 『구보 결혼-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이 꾸며졌다.
송인호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이번 자료집에 실린 당대 문인, 화가들의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글과 재치 만점의 그림들이 결혼의 의미에 대하여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귀 기울여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보 결혼-구보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은 서울책방(02-739-7033)에서 구할 수 있다(기타 문의 02-724-0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