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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동업 깨진 고려아연과 영풍

지난 75년간 동업 관계를 유지해 온 고려아연과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이 경영권 분쟁 격화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지난 2년간 벌여온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과 이사회·주주총회 충돌을 넘어 영풍이 사모펀드와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공식 선언하면서 이제 양측 모두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벌이게 됐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함께 세운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두 창업주는 1949년 ㈜영풍의 모체인 영풍기업사를 합명회사로 공동 창업하고, 25년 후인 1974년 자매회사 고려아연을 설립했다.

 

이후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대형 서점으로 유명한 영풍문고도 영풍그룹이 설립한 계열사다.

 

고려아연은 글로벌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으로, 전자,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등 국내 첨단산업에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공급망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75년간 이어지고 있는 동업 관계는 지난 2022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취임 전후로 최 회장 일가와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 일가 간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이 벌어지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최윤범 회장은 고 최기호 창업주의 장남인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2007년 고려아연에 입사했다. 최 회장은 1975년생, 올해 49세로 비교적 젊은 경영인에 속한다.

 

2022년 회장에 오른 최 회장은 고려아연을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등 3대 신사업을 주축으로 재편하는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다.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은 고 장병희 창업주의 차남으로, 1993년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으며 2015년부터 영풍 명예회장 및 고문으로 있다. 1946년생인 장 회장은 올해 78세다.

 

재계에서는 주력 사업이 부진한 영풍이 고려아연에 현금 배당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고려아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위해 장기 투자에 집중하면서 갈등이 촉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두 회사는 지난 3월 고려아연 정기 주총에서 배당 정책과 정관 변경을 두고 처음으로 표 대결을 벌였다. 배당을 늘리라는 영풍의 요구가 부결되고, 고려아연이 신주 발생 대상 확대를 위해 추진한 정관 변경안도 부결되면서 양사가 '1승 1패'의 팽팽한 성적표를 받았다.

 

주충 직후 영풍은 고려아연이 지난해 9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형태로 현대차그룹의 해외 계열사에 신주를 발행한 것이 위법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고려아연은 수십 년간 영풍과 진행한 아연 등 주요 품목에 대한 원료 구매 등 공동계약 갱신을 중단하는 등 날 선 공세를 주고받았다.

 

지난 7월에는 고려아연이 지난 45년간 본사로 사용하던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을 떠나 종로 그랑서울로 본사를 옮기는 등 물리적으로도 '한 지붕' 관계를 청산했다.

 

고려아연은 업무 공간 부족으로 인한 사옥 이전이라고 설명했으나, 재계에서는 영풍과의 갈등 때문에 업무 공간 분리를 추진한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양사 갈등은 지난 13일 영풍이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 매수를 진행한다고 밝히면서 극에 달했다.
 

영풍은 MBK파트너스에 자사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절반과 1주를 넘기고, 고려아연 지분 약 7∼14.6%(144만5천36∼302만4천881주)를 공개 매수하기로 했다. 이에 따른 공개매수 대금은 약 2조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이 우호 지분을 포함해 33.99%, 영풍 장형진 고문 측이 약 33.1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최 회장 취임 후 무분별한 투자 등으로 부채가 늘어나고 고려아연의 수익성도 하락하고 있다"며 이를 정상화하겠다고 주장한다.

 

이에 고려아연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이번 지분 공개매수는 영풍이 기업사냥꾼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적대적·약탈적 인수·합병(M&A)"이라며 "영풍 경영진과 MBK파트너스 등에 대한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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